분노를 때려잡자..

분노를 때려잡자..

예전에 신문에서 어린자녀를 죽인 부모의 이야기가 사회에 충격을 준일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너무 울어서 화가 나서 아이를 집어던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알아오던 부모의 모습하고는 너무나 다른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비정상입니다. 무엇이 멀쩡한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분노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분노는 사람을 바꾸어 놓습니다. 온순한 사람을 악에 가득한 사람으로, 자상했던 사람을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믿을 수 있었던 사람을 상처 주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나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노는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난폭한 사람으로 변하는 외적인 것으로만 보이지만 그 속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정받지 못함도 있고, 마음의 상처, 불평, 미움, 시기, 원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 등이 안에서 돌다가 겉으로 분출이 됩니다. 즉 겉으로 조용하다고 그 사람이 화를 안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최초의 살인자가 나오는데 그 사람이 “가인”입니다. 창세기 4장에 그가 화가 나서 나쁜 마을을 품고 있을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표준새번역)”4:6-7 주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 얼굴색이 변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을 펴지 못하느냐 ? 그러나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하니,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여기서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하니”라는 말은 원문의 해석으로 보면 – ‘죄가 너를 향하여 기를 쓰고 달려들려고 하나’라는 뜻입니다.

즉 소위 말하는 열이 받아서 뚜껑이 열릴 때 그 문에서 죄가 나에게 들어오려고 기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뚜껑이 열리지 않게 자신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 감정이 있기에 우리는 감정대로 행동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나은 생활을 하려면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화를 내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날 때부터 이성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번 화를 내면 두 번 화내기가 쉽고 그 다음에는 세 번 화를 내기가 쉬워집니다. 마찬가지로 한번 참으면 두 번을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보다 더 나은 삶은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쪽짜리가 아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때 우리는 분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을 알고 제사를 드렸던 사람이지만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 동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잠언 29장에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분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그리고 잠언 16장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올 한해에 마음을 잘 다스리는 한해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살인을 한 가인에게 동생이 어디 있냐고 묻자 그가 말하기를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Am I my brother’s keeper?”) 라고 말합니다. 그는 Brother’s keeper가 아니가 Brother’s Killer였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지켜주는 자가 되지 않으면 상대방을 죽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미움을 쓸어버립시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임성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