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 발전하니까 은퇴준비는 필요없다고?
일론 머스크가 피터 디아만디스, 엑스프라이즈 재단 회장과 했던 팟 캐스트, ‘문샷’ 들어보셨는지요. 여기서 머스크가 여러가지 얘기를 했는데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I 로 인해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급격히 하락할 거고, 그 결과 디플레이션이 발생해서 원하는 것을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되니까 인류 역사 상 처음으로 풍요가 기본값인 사회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일할 필요도 없고 또 은퇴를 대비한다고 돈을 모을 필요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유토피아 사회가 온다는 건 반갑긴 한데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거냐 하는데 대해선 선뜻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세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AI 사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게 첫번째 이유고 그 다음은 AI 도입으로 대규모 실직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앞으론 노동도 필요없고 저축도 필요가 없다고 하니 뜬금없어 보인다는게 두번째 이유입니다.
또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필요한 걸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나이브한 거 아니냐 그런 생각도 듭니다. AI 공산주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건데 공산주의는 이미 철 지난 얘기 아닙니까? 빅테크 회사들이 AI 사업에 팔을 걷어 붙이고 뛰어 드는 이유는 뭘까요? 돈이 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벌 수 있다 그래서겠죠.
기업 존재 이유는 이윤의 극대화, 이거 하나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기업들이 AI 에 관심을 가지는 건 AI 의 높은 생산성을 이용해서 비용이 제일 많이 드는 노동력을 대체하고 싶어서란 이유 때문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머스크 얘기대로 AI 가 발전하면 할 수록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제로로 수렴될 거란 조짐이 보인다면 기업들은 어떻게 나올까요. AI 에 투자하는 건 손해라고 판단하고 손을 빼려고 하지는 않을까요?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AI 세상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단 얘기가 되겠죠.
AI 를 도입하면 보편적 고소득, 머스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Universal High Income (UHI)이 가능해져서 돈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하죠. 그런데 이것도 믿기가 힘든 얘깁니다. 현재 일자리 상황 어떻습니까? 공장에는 로봇이 그리고 사무실은 AI 가 들어서면서 일자리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 들고 있는 현실이죠. 덕분에 의사나 변호사 그리고 회계사 같은 직종도 곧 사라질 거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고요.
AI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단 얘기입니다. 그런데 미래엔 AI 가 다 해 줄 거니까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런 말이 귀에 와 닿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값이 제로에 수렴한 덕분에 누구나 그걸 누릴 수 있는 세상이라면 UHI 란 게 생길 수 있을까요? 생산비용도 제로에다 판매수입도 제로니까 소득 자체가 생길 수 없는 구조죠. 그래서 유니버셜 하이 인컴이란 얘기는 말 장난 아니냐고 생각하는 겁니다.
백보 양보를 해서 AI 의 높은 생산성 덕분으로 나눠 가질 수 있는 UHI 가 생긴다고 봐도 그렇습니다. 그걸 공평하게 모든 사람이 나눠 갖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인간이 가진 탐욕 때문이죠.
아흔아홉 가진 사람이 하나 가진 사람 보고 백 개를 채워 달라 한다는 말 있지 않습니까? 이런 얘기가 왜 나왔겠습니까. AI 를 지배하게 될 아주 일부 계층, 이 사람들이 부를 독점하려 할 거고 또 그게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단 뜻이죠. 그래서 머스크같은 사람들만 더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이걸 막을 수 있을까요? 공정하게 분배를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가능할 겁니다. 소수의 선의가 아니라 대중의 합의된 선택에 맡긴다면 적어도 불만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AI 가 올려준 생산성의 과실을 나누는 문제는 결국 정치의 영역이란 얘기죠. 제프리 힌튼이라고 하면 AI 대부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도 AI에 대해선 아주 부정적이라고 하죠. AI 가 지금처럼 빠르게 발전하면 인간 사회가 생존할 수 있을지를 더 걱정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AI의 지능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더 높아지는 세상이 된다면 인간이 AI 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지능이 높은 존재가 자기보다 지능이 낮은 존재의 지배를 받으려 하지 않을 거라는 건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으니까요.
AI 가 어떻게 발전할 진 물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거라는 건 분명할 겁니다. 머스크가 생각하는 대로 유토피아 사회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인류를 없애려고 터미네이터가 쫓아 다니는 그런 사회가 될 가능성도 있겠죠.
어쨌든 변화의 폭은 상상 이상으로 클 거라는 건 분명합니다. 불확실성도 당연히 커지겠죠. 그래서 AI 시대에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이건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겠죠. 아무 준비없이 미래를 맞았다가 낭패라도 당한다면 그건 고스란히 본인 몫이 될 테니까요. 그래서 은퇴를 위해 저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메시지는 아주 위험하고 또 무책임한 발언이란 생각을 할 수 밖엔 없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