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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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

계절의 여왕 5월,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은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자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입니다. 가정의 중심은 가족입니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부부의날(21일)에다 입양의날(11일)과 성년의날(16일)이 오롯이 몰려있는 5월은 그래서 가정과 가족을 새삼 반추하고 반성하게 하는 달입니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좇던 어린 시절…’

그런 어릴 때의 기억은 오래된 동요나 문학작품에서 겨우 찾을 수 있는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면 행복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다정스럽게 대화하는 가족의 모습입니다. 그런 가정을 생각하는 계절 5월이 돌아왔습니다. 이런 때면 어김없이 다시 불러 보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존 페인(John H. Payne)이 작사한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로 시작하는 ‘즐거운 나의 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운 나의 집’은 말할 것도 없이 건물인 집(house)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행복한 가정(sweet home)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주는 행복한 가정은 세상에서 지친 가족에게 쉼을 주는 생명의 터전입니다.
‘즐거운 나의 집’은 전쟁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1862년 남북전쟁 당시 래퍼핸녹 강(Rappahannock River) 전투 때의 이야기입니다.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밤이 되자 북군 군악대는 그리운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병사들을 위해 조용히 이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하나 둘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리가 남군 진영에도 울려 퍼졌고 그들도 함께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강을 사이에 두고 진을 치고 있던 양쪽 군인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으로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얼싸안고 모자를 던졌습니다. ‘Home sweet home(즐거운 나의 집)’이 적군도 하나가 되게 한 것입니다.

● 붕괴되는 가정들

우리가 사는 주택은 예전에 비하면 정말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살기에 편리하고 보기에 좋은 가옥(家屋)들은 늘어났지만 즐겁고 행복한 가정(家庭)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 연구보고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이혼율이 47퍼센트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물론 이 통계는 얼마 후 다른 행정 부처에게 비율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하튼 이 보고서는 한국 사회에서 가정 붕괴가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가정은 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근원이며 터전입니다. 우리 개개인의 삶은 가정에서 출발하며 가정에서 자라납니다. 그뿐 아니라 가정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입니다. 사회가 한 생명체라면 각각의 가정은 마치 그 생명체를 구성하는 세포와 같습니다. 어느 한 세포가 병들면 마침내 그 생명체가 죽음에 이르듯이 가정이 병들면 마침내 그 사회도 붕괴되고 맙니다. 가정의 건강이 곧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보루입니다.

● 절대적 가치관의 상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가정이 붕괴하고 있을까요? 알프스 산자락에 설립한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로 유명한 프란시스 쉐이퍼 박사는 현대인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동안에 ‘절망의 선’을 넘어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류가 20세기 모던 시대를 시작하면서 절대 가치를 잃고 절망에 이르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더 나아가 모든 절대적 가치관이 사라지고 오로지 개인의 주관만 남아 있는 소위 포스트모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사조가 가정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버지의 권위와 어머니의 헌신에 더 이상의 절대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부부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에게 지켜야 할 절대적인 의무가 사라졌습니다. 이런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정의 붕괴는 자연스러운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가정 곧 웰빙 가정의 회복은 이 시대가 저버린 절대적 가치관의 회복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 꿈이 있는 사람

청년. 그것은 인생의 꽃입니다. 꿈이 있고 사랑이 있고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럽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직장에 다니며, ‘필(feel)이 꽂히는’ 배우자를 얻고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기량을 한껏 펼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은 젊은이의 특권입니다. 명품으로 몸을 휘감아도 보고, 분위기 짜릿한 레스토랑을 찾고, 미지의 나라를 여행도 해보고, 남부럽지 않은 집도 꾸미고 싶고. 보릿고개에 나물 죽으로 연명하며, 먼 산에 가서 땔감 구해오고, 옆구리 터진 워커 신고, 책가방 대신 밀가루 포대에 책을 담아 학교를 다녔던 부모들. 그래도 밥벌이가 안 돼 월남 파병을 자원하거나 열사의 나라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몇 년간 땀을 판 덕분에 자녀들 교육시키고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었던 전 세대의 추억담은 젊은이들에겐 굳이 듣고 싶지 않은 푸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