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방법 시리즈 제4부 기도의 특권

평생을 함께 한 친구 둘이 인생의 황혼이 가까워올 때, 어느 조용한 오후 둘이 함께 말 한 마디 없이 앉아있다가 저녁이 되면 한 사람이 둘 모두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오늘 오후 우리 함께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구나.” 이러한 우정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결코왜 기도해야 합니까라고 묻지 않을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 혹은 그분께 말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친교요, 생명이다. 우정이나 친교에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말하는 데 있지 않고, 말을 뛰어넘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데 있다. 진정한 친구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귀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두 사람은 조용하게 바닷가에 앉아 손을 잡고 침묵 속에 달콤한 교제를 즐길 수 있다. 두 사람은 숲 속을 걸으며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연과 하나님과 그리고 서로와 교제를 나눌 수 있다.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헌신하며 하나님과 서로에게 자신들을 바칠 때에 완전한 이해가 영혼에 깃들 것이다. 겉으로 드러남 없이 마음과 영혼의 교통이 있을 수 있다. 비록 입으로 하는 말은 없을지라도 사랑, 우정, 동의 그리고 조용한 기쁨과 넘치는 행복이 있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다음의 이야기의 뜻을 이해할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지금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천국은 단지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

스바냐 3 17절보다 더 아름답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해 놓은 곳은 없을 것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구절을 읽으면 어머니가 그녀의 어린 것을 품에 안고 기쁨에 겨워 노래하며 사랑으로 편히 있을 때 아이가 엄마에게 바짝 다가붙는 평화로운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평화, 만족, 사랑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예로 든 것이다. 어머니가 품 안의 아이에게 조용히 노래 불러 주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노래 부르신다. 그분께서는 그 사랑 안에 쉬신다. 이것은 그 속성이 사랑이신 하나님께 평화와 만족을 드린다. 어떻게 우리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비할 데 없는 사랑으로 두르신 그분을 한 번 쳐다보기만 한다면 어찌 우리가 그분과 교제를 나누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도는 교제이다. 기도는 생명이다. 기도는 사랑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귀향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크신 사랑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때, 우리는 결코 낙담하거나 실망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집에 돌아올 날을 열망하시며, 그 생각에 기뻐하신다. 지금도 그분께서는 이제 곧 될 일을 보며 즐거워하신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자녀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세기의 사건을 준비하시며 하나님께서는 행복하시다. 오래지 않아 다가올 이 날은 하나님께도 어마어마한 날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본향에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열망은 우리의 것보다 더욱 더 크다. 그분께서는 이미 오래 동안 기다려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과 친교, 그리고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도한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또한 다른 어떤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영혼의 만족감을 그분에게서 얻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 기도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기 위해 기도한다. 그분의 마음을 바꾸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도록 기도한다.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계획을 바꾸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사 그분의 계획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시도록 기도한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견딜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신실하게 살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고생이나 시련에서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감내할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한다. 일감을 치워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 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과 성도들의 교제를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기도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기도란 진정한 감동 없이 해내야 될 일이고, 특권이라기 보다는 의무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뜨뜻미지근한 그리스도인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이름있는 사람들에게도 기도는 습관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많은 경우, 이것은 사람들이 기도의 의미와 그 무한한 가능성을 희미하게밖에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도를 말하고, 기도를 외울 뿐,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토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진수성찬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빵 부스러기만 주울 뿐이다. 그들로 하여금 기도와 기도의 가능성을 연구하게 하라. 그들이 기도할 때 묵상하게 하라. 그들로 하여금 친구에게 하듯이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그리하면 그들은 전에 결코 꿈꾸지 않았던 영역에 다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