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방법 시리즈 제2부 기도하는 이유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신다. 우리가 일일이 고하지 않아도 그분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 자녀는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자리를 달라고 아버지께 조르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공급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심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분께 우리의 필요를 아뢰어야만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가? 아버지께서 채워주실 것을 다 알면서도 무릎 꿇고 비는 것은 우리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아닌가?
그에 대한 답은, 사람들이 기도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또한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모두에게 똑같이 비를 내리신다. (마5:45) 아무도 무언가를 위해 빌어야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편애함 없이 모두의 필요를 채우신다. 사실, 많은 경우 악한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들보다 더 잘 산다.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우를 허락하심이 틀림없다. 만일 그분께서 의로운 자들에게만 복을 주시고, 악한 자들은 가난으로 저주하신다면, 어떤 이들은 단지 잘 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이다. 그렇다면 복은 단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도록 매수하는 뇌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기도해야 하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특별한 도움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면,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열심히 연구하고 일해야 한다면, 도대체 왜 기도해야 하는가?
고백에 대한 삐뚤어진 인식
이 모든 질문들은 전부 기도란 것은 일하지 않고도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낼 수 있는 방편이라는 전제를 기초로 한 것이다. 믿지 않는 자는 성공하기 위하여 일한다. 그리스도인은 기도로서 일을 대신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아니다. 기도는 행함이나 일, 혹은 다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 기도하고 회개함으로 용서받을 수는 있지만, 악한 행동의 결과를 바꾸거나 그에 따르는 형벌을 없이 할 수는 없다. 다윗은 그의 죄를 자백하고 깊이 회개하였지만, 그가 지은 죄의 결과들은 없어지지 않았다(삼하12:13~14).
여러 해 전, 나의 학생들 중 한 명이 중요한 시험에서 부정 행위를 하였다. 그는 평균 정도 되는 학생이었는데 시험 결과가 너무 잘 나와서 B학점을 받았다. 얼마 후 그의 양심은 그를 괴롭혔고 그는 자신의 부정 행위를 깊이 뉘우치며 나에게 그것을 고백하는 편지를 썼다. 나는 그가 고백해서 기쁘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의 점수를 B에서 F로 고쳤다고 알려주었다. 그 학생은 내가 한 이 일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면서 말하기를 만약 자백한 것의 결과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결코 자신의 잘못을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자백은 B학점을 얻을 만하지 않았던가? 그 학생은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치르지 않은 시험에 왜 내가 B학점을 줄 수 없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자백한다는 것으로 그의 부정 행위를 고칠 수는 없으며 B학점이 요구한 공부를 대신할 수도 없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그 학생의 자백의 결과로 그에게 B학점을 준다면 부정 행위를 한 다른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해야 될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정직하게 학점을 받은 모든 학생들에게 불공평한 일이 될 것이다. 상을 얻으려고 하는 자백은 진정한 자백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죄를 자백하면 형벌을 면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심으로 사람을 매수하지 않으신다. 순종하는 자에게 상이 허락된 것은 사실이나,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하는 순종이나 자백은 거의 가치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그런 순종은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까불지 않으면 사탕을 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얌전하게 순종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욥의 경우에 바로 이 원칙이 걸려있었다. 사단은 조소하듯이 “욥이 아무 이유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십니까?” 라고 물었다.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이고 욥이 경건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하게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넌지시 말하였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1:11)
하나님은 사단의 불평을 받아들이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고 하셨다. 이 시험을 허락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재물을 바라고 하는 것이라는 사단의 고소를 꺾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기적인 동기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 하나님께서 축복을 거두어 가신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는 자가 이 세상에 있음을 보이고자 하셨다. 욥의 재물을 뺏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사단은 욥이 가진 모든 것, 심지어는 그의 자녀들까지도 모두 빼앗았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1:22)
사단은 패배하였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다시 돌아와 말하기를 그가 진 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몸에 손대지 못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험의 법칙을 바꾸는데 동의하시고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2:7) 여전히 욥은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시험을 그에게 허락하셨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과는 첫 번째 시험과 똑같았다.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욥2:10)
시험은 끝났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주장과 고소가 허위였음을 증명하셨다. 욥은 이익을 얻고자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었다. 다음 호에 왜 기도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계속 살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