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표현 주의 – 감성의 미술
표현주의 미술은 1900년대 초부터 약 25년 동안 독일의 많은 화가들 사이에서는 실제
세계의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개인의 감수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그런 감수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왜곡되고 과장된 형태와 색채를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탄생한 미술사조이다. 다시 말하면 표현주의는 미술의 르네상스 이래 유럽
미술의 전통적 규범을 떨쳐버리려 했던 20세기 미술 운동 중 하나 이다.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감정‘과 ‘감각(주체)‘의 적접 적인 표현이며, 회화, 선, 형태, 색채 등은 감정과
감각의 표현을 위해서만 이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구성(구도)의 균형과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무시‘되었으며
‘왜곡‘은 주제나 내용을 강조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19세기말 화가 고흐와 고갱 그리고 뭉크로 부터 시작하여 벨기에 화가 앙소르,
오스트리아 화가 클림트, 쉴레 그리고 코코슈카로 이어졌다. 이러한 표현 주의가
정점에 이른 것은 다리파와 청기사파 라는 독일의 두 그룹에서 의해서 였다.
다리파
다리파는 1905년 키르히너라는 화가가 독일 최초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추구하며
만들어진 그룹이다. 이름 그대로 그들의 작품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할 것이다. 라는 것에서 붙인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모든 낡은 관습에 대항하며 살아갈
자유를 요구하였고 또한 그들은 다리파가 해체될때 까지 공동생활을 하며 작업을
했는데 극도로 왜곡된 형태와 색채의 부조화를 통해 격렬하고 깊은 고뇌가 가득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들은 목판화를 부흥기키기도 하였는데 목판화는 그들이 추구하는 극적인 흑백대조,
거친 형태, 톱니 모양 선들의 목판화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하였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키르히너와 놀데 등이 있다.
키르히너는 다리파의 창시자이며 거리의 풍경과 술집의 무용수 등을 주제로 그렸으며
특히나 표현주의 특유의 거칠고 모난 면을 잘 표현하였다. 그의 그림은 세계1차 대전
이후 더욱더 광폭하고 병적으로 변하게 되었는데 결국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또 다른 화가인 놀데는 태평양의 원시 부족 미술품들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원시 미술품에서 서양 미술이 잃어버린 힘찬 활력을 보았던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가면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면서 인간의 내면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기 원했다. 그는 항상 추변의 추악한 모습을 묘사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우리는 항상 겉 모습만 생각을 하게 마련인데 이 두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큰 거 같다.
J Art Academy
원장 이준규
키르히너,<베르린 거리풍경>, 다리파미술관, 베를린
놀데, <광신자>, 슈프렝엘미술관, 하노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