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주의- 과학적인 병치혼합
신인상주의 미술은 프랑스에서 나타난 인상주의 기법을 좀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추진하고자 한 미술 사조로 쇠라와 시냑이 그 대표적인 화가이고 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점묘법등의 기법과 이론을 뜻한다. 빛을 분석하는 인상주의 방법을 계승 받았지만 빛에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형태에 대한 부분을 간과하는등의 문제점을 느끼고 인상주의기법에 과학적인 이론을 부여하면서 나타난 것이 신인상주의 운동인데 그들은 이런 이론을 그림에 나타내기 위해서 색채를 원색으로 환원하여 많은 점들로만 화면을 구성하며 통일성을 유지했다. 즉 과거에는 물감을 팔레트나 캔버스 위에서 혼합을 했지만 이들은 시각적 혼합으로 (마치 색이 혼합된것같이 보이는 현상)색상을 표현했던 것이다.
특히31세라는 짧은 생애로 인생을 마감했지만 이 점묘화법을 통해 미술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남기는 위업을 달성한 쇠라는 색채학과 광학 이론을 연구하여 그것을 그림에 적용하여 점묘화법을 발전시켜 신인상주의를 확립해 갔다. 그는 인상파 화가들의 색채 원리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인상파가 무시한 화면의 조형 질서를 다시 구축하였는데 그림의 주제는 대부분 일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풍속적 풍경을 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점묘파의 출현을 알린 대표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쇠라는 매일 같이 아침부터 그랑자트 섬에 나가 여러포즈를 현장에서 스케치하고, 그 스케치한 모습들을 새롭게 조형적으로 만들어 화면에 재배치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여 독특하고 과학적인 인상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8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큰 반향을 이르켰다.
또 한명의 대표적인 신인상주의 화가인 시냑은 신인상주의 그룹의 이론가이기도 했다. 그는 1899년 라 브루 블랑쉬지에 발표된” 으젠느 들라크루아에서부터 신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라는 탁월한 연구를 통해 동시적인 대비 법칙을 기반으로 터치의 체계적인 분할이 나타나는 분할 묘법을 분석하였다. 조르주 쇠라가 신인상주의의 창시자라면 시냑은 쇠라의 절친한 친구이자 지지자로서 신인상주의를 주도했으며 후에 마티스와 같은 야수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자신의 전생애(1863~1935)를 신인상주의에 바친 시냑은 31세에 요절한 과묵하고 사색적이었던 쇠라와 달리, 활발한 성격으로 화가로서뿐 아니라 이론가로서 신인상주의를 설명하고 널리 알리는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 1884년 <앙데빵당Independent> 전에서 쇠라를 만나면서 신인상주의의 이론과 제작법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색점을 병치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점묘주의’이라 지칭했던 쇠라와는 달리 시냑은 “우리가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름다운 색채에 대한 열정 때문이지 점 찍기에 흥미를 느껴서 그림을 그리는것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점을 찍는 방법 자체보다는 그 이유에 더 주목해 주기를 기대했다. 즉, 신인상주의의 목적은 색채의 순수성을 고수함으로써 빛과 색채의 조화를 최대한 나타내려는 것이다. 초기 작품들은 당시의 여느 작가들의 것과 비슷했으며 오히려 색채는 더 탁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앙데빵당 전에서 쇠라를 만났던 1884년 이후 점차 화려한 색채와 가늘고 긴 붓 터치가 특징인 점묘주의가 나타나게 되었고, 담백하고 맑은 색채 덕분에 큰 작품들조차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주었다.시냑이 관심이 있던 주제는 풍경으로, 안정된 구도와 밝은 색채로 이루어진 그의 풍경화는 마치 낙원을 묘사한 것 같은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데,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고유한 특징인 오렌지색과 파란색의 보색대비는 자연스레 장식적 효과를 일으켜 보인다.
J Art Academy
원장 이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