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구원 그리고 선택
죄란 무엇인가? “죄”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만일 그대가 자신의 병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받으려고 의사를 찾아갔는데, 의사의 오진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처방과 치료를 받는다면, 그대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를 “죄”라는 치명적인 질병으로부터 회복시키는 복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죄”라는 질병에 대하여 오진을 할 경우, 죄의 치료제인 복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죄”라는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모든 사
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속에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에 대한 방법이 담겨 있다. 사람은 타락한 본성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상태로 태어난다. 그러나 물려받은 타락한 본성 그 자체 때문에 지옥불의 정죄를 받는 것은 아니다. 오직 타락한 육체의 요구와 사단의 유혹에 스스로 굴복하여 십자가의 은혜를 거절하고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영원한 파멸에 이르는 죄인으로 정죄를 받게 된다.
죄에 대한 유일한 정의는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라는 성경 말씀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 한다(요일 3:4).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에게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주셨다. 그러므로 비록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체가 죄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인간의 의지에 악을 행하라고 소리칠지라도, 인간의 의지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것을 거절하고 성경 말씀에 일치하는 거룩한 삶을 살기로 선택할 수 있다. 선과 악, 둘 중에서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그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지며, 하늘로부터 내려온 능력을 받는 그리스도인마다 타락한 육체의 요구와 사단의 유혹을 거절함으로써 죄를 승리하고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악이 유죄가 되는 조건
만일 집안에서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면, 그 고양이는 사람의 발에 자신의 몸을 문지르고 무릎에 올라가서 재롱을 부리기 좋아할 것이다. 훈련을 잘 시키면, 대소변을 가릴 수도 있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열린 문틈을 통하여 고양이가 집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고양이가 비록 잘 길들어 있다고 할지라도, 고양이의 본성 속에는 야생의 기질이 감추어져 있다. 고양이는 뒷마당에서 쥐를 잡아서 잔인하게 죽였다. 그것도 단번에 죽이는 것이 아니라, 쥐를 가지고 한참 동안 놀다가 서서히 죽인 후에 그것을 물고서 칭찬받으려고 주인에게 찾아온 잔혹한 고양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주인은 비록 고양이가 잔혹한 악을 범하였다고 할지라도, 고양이에게 유죄를 선언하고 벌을 줄 수 없다. 왜 그런가? 주인은 비록 고양이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고양이의 뇌 속에는 도덕적인 판단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없는 고양이에게 유죄를 선언할 수가 없다. 이제 갓 태어난 신생아가 아담과 하와로부터 유전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타락한 본성을 전수받았다고 해서 신생아에게 유죄를 선언하고 영원한 지옥불의 형벌을 가할 수 있는가? 신생아가 젖을 달라고 크게 소리 내서 운다고 해서 이기적인 죄를 범했다고 정죄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신생아는 엄마를 귀찮게 하는 이기적인 악을 행하였지만, 유죄를 선언 받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신생아는 아직 도덕적 판단력이 충분하게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은 악이 유죄 선언을 받게 되는 조건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판단력(이해력)이 악과 유죄를 구별하는 구분 점이 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 9:41) 바리새인들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똑같은 본성(육체)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타락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로 말미암아서 죄인이라는 정죄를 받지 않았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이해(지식)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저지른 악에 대하여 정죄를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정죄 받았던 것이다. 죄의 문제는 이해와 선택의 문제와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무지는 악한 행위를 가져올 수 있다.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올바르게 행했을 것이지만,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잘못을 죄로 정죄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지식은 악을 죄로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이 살았던 타락한 생애나 유전적으로 이어받는 나쁜 본성 때문에 정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죄된 선택 때문에 정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결정한 죄된 선택 때문에 정죄 받게 된다. 지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죄를 범하면,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죄이다.
얼마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신가! 얼마나 공정하고 정확한 복음인가! 죄란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의 법에 대한 고의적인 불순종이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