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환경보다 좋은 마음에 투자하세요.
좋은 환경보다 좋은 마음에 투자하세요.
얼마 전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시애틀을 방문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곳이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셨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산도 많고 바다도 가깝고 자연이 아름다운 워싱턴 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환경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냐는 것입니다. 대부분 한국에서 바로 오신 분들은 공기가 좋다고 하고 또 자연이 아름답다는 말들을 자주 하십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처음의 그 느낌보다는 삶에 지쳐서 아무런 느낌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분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환경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다가오는 사계절 그리고 신선한 공기, 촉촉이 내리는 비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산도 강도 모든 자연은 그대로인데 우리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파트에 사는 것도 감사했는데 지금은 집에 살아도 불만이 나옵니다. 푸른 잔디를 보고 그 위를 걷는 것만 해도 행복하고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감동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하고 한적한 이곳이 좋다고 했는데 이제는 너무 변화가 없고 단조롭다고 복잡한 한국이 좋다고 말을 합니다. 미국에는 정말 변한 것이 없는데 단 한 가지 마음이 변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문제가 있고 삶이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사랑이 있고 서로간의 갈등이 있고 그러기에 이해와 용서가 있습니다. 종합해보면 내가 지금 처음보다 행복한 마음이 덜한 것은 환경이 많이 변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변해서 그건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마음을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환경이 아주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도 있듯이 환경을 아주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문제는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만족이라는 것도 이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100%만족한 환경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온전한 만족을 기대하는 것도 어쩌면 잘못된 것입니다.
“100% 만족은 1퍼센트의 일과 99퍼센트의 자족에서 이루어진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떠한 환경도 또한 배우자도 가족도 나를 온전히 채워줄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채워가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바울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엄청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삶이 인간적으로 볼 때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빌립보서4:11, 새번역)
지금 이곳저곳에서 경기가 좋지 않다고 말들을 합니다. 어려운 때이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또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에 하늘도 그대로 있고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의 하늘도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변하는 마음을 잡아야합니다. 그리고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며 투자해야합니다. 먹고사는 것에 투자하는 것처럼 미래를 위해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자족할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