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볶음과 신김치국 #1

벌써 한달째다. 감기몸살로 고생을 하는지가!

처음엔 그저 목이 잠길정도로 조금 신경이 쓰이게 하더니 며칠동안 머리가 아프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을 제대로 쉴수없게 코가 막히면서 드디어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11월은 우리사무실이 연말결산을 해야하는 달이기도 하여서 일이 엄청 많다. 그리고 워낙에 하는일이 어렵다보니 우리사무실은 이직율이 아주 많다. 대학원을 졸업한 친구들이 일단 한번 들어왔다가는 워낙에 굉장한 홈리스고객들과 정신병을 가진사람들하고 일을 하다가 금방지쳐서 두달아님 6개월정도되면 언제 떠났는지도 모르게 떠나버리고는 하여 우리같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일을 하는고참들에게는 그야말로 일복이 터진다. 그들이 떠난몫까지 감당을 해야하니까 일은 더많아지고 시간은 급하고 몸은 따라주질 않고…..

새로운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워낙에 일이 어렵다보니 지원자도 별로 많지않치만 지원자들에 붙는 조건이 워낙 까다롭다보니까 아니, 일단 들어와서도 견디지못하고 떠나버리니까 새로운 카운셀러를 고용하는 일도 우리사무실에는 커다란 문제이다. 자격은 높고 일은 어렵고 일에 비하여  받는 샐러리는 별로 마음에 안드니까 요즘같이 상황에서는 우리들의 일은 사명감이 없으면 감당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일은 사무실에 앉아서 오는 고객을 받고 상담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 상담과 케이스매니징을 함께 하여야 하기에 일이 쉬운 것이 아니다. 케이지 매니징 이라는 이야기는  한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들을 대신 해주는 일이다.

병원에는 잘다니는지? 먹는약은 제대로 복용하는지? 음식은 제대로 먹는지? 잘곳은 준비가 되어있는지?

나라에서 받는 베네핏은 제대로 오는건지? 병원비 밀린 것은 없는지 ? 옷은 제대로 입고 다니는지? 잠은 제대로 자는지? 등등 한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 모든 것을 상담과 함께 살펴봐야 하니까 일이 보통 많은게 아니다. 보통 한사람의 카운셀러에게 40여개의 케이스가 주어지는데 직원 한사람이 이직을 하게 되면 그일을 남아있는 카운셀러들이 나누어서 돌보아야 하니까 일이 넘치고도 넘친다. 우리가 만나는고객은 보통사람들이 아니다. 약물중독자들이거나  정신적인 문제들을 갖고있는 이들이기에 일을 하는데 쉬운일이 없다.

3달전에 직원들 중에 젊은층4명이 거의 같은 시기에 그만두었다. 일단 대학원을 졸업하고 홈리스정신병자들과 약물중독자들하고 일을 해보겠다고 들어왔다가는 놀래서 그만두고 무서워서 그만두고 워낙에 위생하고 관계없이 살아가는 이들을보고 그야말로 더러워서 그만두고 힘이 들게 하니까 힘이 들어서 그만두고 하다보니 우리 사무실에서 아직도 일을 하고있는 친구들은 정말 천사들 같다. 자기들이 갖고있는 학위와 실력을 가지고는 더편한일도 얼마든지 할수있는데 여전히 남아서 오랜시간 함께 일하고있는 내동료들은 거의 가 10년이상을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이들은 물론 학사 소유자들이다.

 이들이 갈곳은 많다 그런데 자기들이 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이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것이다.

나역시 벌써 홈리스가족들하고 일한지가 10여년이 넘어간다.

어떻게 아직도 이일을 하느냐고 묻거든 그야말로 대답은 없다. 그냥 내가 해야하기에 라는 대답밖에..

물론 나에게도 좀더 편한곳에서 오라는 초청을 몇번을 받았지만 그일은 누구나 할수있기에 다른사람이 해도되지만 우리가 하는일들은 우리가, 아니 내가 해야하기에 아직도 이일을 하고 있다. 우선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말로 가관이다. 아침에 로비에 내려가보면 머리에 등잔의 전구를 빼고 갓만 쓰고온사람, 얼굴에 치약을 전체로 바르고 와서 떡하니 앉아있는 사람, 머리가 떡이 될정도로 뭉개어져서도  얼굴엔 온갖화장품으로 무지개로 칠하고 들어오는사람, 이한겨울에 반바지에 얇은 티셔츠차림으로  들어오는 사람, 약에 취한채 생리가 바지에 묻혀져서 바지에 딱지가 붙을정도인데 절대로 옷을 못벗기게 하는 나이가 40대인 여자등등…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천의 모습을 가진사람들이다. 물론 이들중에는 치료약을 먹으며 정상적인 사람들하고 비슷하게 생활할수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부류는 거의 10분의 2정도이고 ..

오늘도 낮1시즈음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서 사무실에서 컴퓨터가 마비되면 별할일이 없는터라 아웃리치로 나섰다. 어젯밤 새벽 1시에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헤매이다가 순찰차에 발견되어서 다시 그룹홈으로 돌아올수있었다는 내케이스에 있는 연세가 많은 한국분을 찾아가 보아야했다.  

물론 그룸홈에는 그곳의 카운셀러들이 있지만 내가 하는일은 정신과 카운셀러라 무슨일인가 가보아야 했다.

먼저 한번 이분을 잃어버리고 밤새잠을 못잤다. 다행이도 그다음날 오버레이크 병원에 입원해있던 이분을 찾아내고는 내가 하룻밤을 가슴앓이를 했었다. 혹시 무슨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다치신건가? 혹시 다른곳으로 가버린 것은 아닌가?

오늘 낯에 이분을 찾아가보니 그룹홈 자기방에서 밤새 헤메이시다가 못잔잠을 달게 주무시고 계셔서 자는 이분을 들여다보고는 이곳에 있는  카운셀러에게 지난번 내가 만들어드린 이름표를 꼭 목에 걸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는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려니 저만치에서 내고객 00가 비척거리며 걸어오는게 보인다. 내가 있는곳까지 가까이 와서 나를 발견한 00는 나에게 돈을 달란다.

돈은 뭘할건데? 음 에버렛에 있는 엄마를 만나러 간단다. 그럼 버스표주면 되겠네 ? 라고물으니 돈을 달란다. 물론 내가 돈이 어디 있냐고 말하며 나 돈은 안갖고다니는데 라고 대답하자 화가난 00가 돌아가지도 않는 혀로 말한다

댐유. 유돈해버 머니!

나는 비척거리는 00를 뒤로하고 사무실로 앞장서 걸으며 사무실로 오면 내가 버스표줄꺼야 라고 말하며 사무실로 와버렸다.

사무실로비에 들어서니 우리사무실 근처 오래된 아파트에 일년동안 임시로 살게해 준 쟌이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반가워한다. 그런데 나는 피곤해서인지 별로 반갑지가 않다.

아니 이친구의 성격을 아는지라 만나야되는게 미리 머리가 불편해진다. 아이구!

또 얼마나 이친구의 푸념을 들어야하지… 이친구는 퍼스날리티 디스오더이다. 자기는 잘못한게 전혀없다. 다 다른사람의 잘못이다.

전혀 요지부동이다.

내 케이스로 6년간 있었는데 하도 쌍욕을 해대어서 불편하던 차에 내가 어느모임에 갔다가 30분기다리게 했다고 카운셀러 바꾸어 달라고 우리 디렉터에게 부탁한 것을 내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러라고 하니까 이친구 내가 그렇게 결정할줄을 몰랐는지 자기는 그냥 레지나에게 남아 있겠다는 것을 내가 나는 너무 바뻐서 네 케이스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겨갔으니 안돼! 라고 말하니 이친구 계속 나에게 남아 있겠다고 사정사정하는 것을 내가 절대로 안돼! 라고 못을 박아놓았다. 마지막에는 나에게 갓댐 레지나 라고는 다른 카운셀러에게로 갔다.

  나한데 한번 다른카운셀러에게 옮기겠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내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니까 아마도 자기본인도 놀란것 같다. 홈리스고객이 자신의 케이스로 있다가 다른 카운셀러로 자주 올겨가면  우리의 진급에 마이너스가 된다. 이 약아빠진  친구가 이런상황을 알고 겁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친구는 워낙에 소문이 나있는터라, 그리고 나도 이친구 일하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중이라 잘됐다 싶어 적극적으로 밀어부쳤더니 이친구 나의 태도에 놀라서 다시 우리 디렉터에게 부탁하기를 자기는 절대로

레지나에게 남겠다는 것을 내가 우리 디렉터를 설득시켰단다. 내가 저친구를 떠나면 세사람몫을 더잘일을 할수가있을터이니 내게서 빼달라고…

물론 이친구가 떠나고 내게는 3사람도 더오지도 않고 내일만 더 가벼워지고 이친구를 맡은 20년베테랑 카운셀러인 친구 0는 혀를 내두르며 레지나 너 어떻게 저친구하고 함께 일을 했니?한다.

글쎄 !

6년후에 대답해줄께! 라며 서로 웃어버렸다.

나는 어릴때 아마도 9살이었던걸로 기억이 난다.

 감기로 열이 올라서 학교도 못가고 집에서 있는데 머리에 열이 하도 심하게나는데 집안에는 그때 아무도 안계셨던것 같다 .

몸에 열이 너무 오르니까 어린나이에도 열을 식혀야 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찬물을 떠서는 그추운겨울 날씨에 얼음처럼 찬물로 옷을 벗고 목욕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저녁 엄마가 집에 돌아오셔서는  온몸에 열이 오른 나를 들쳐없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몸은 불덩이 처럼 뜨겁고 그이후로 병원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죽을고비도 몇번 넘기고.. 그이후로 겨울만 되면 나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