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


지난호에서 초현실주의 미술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을 했다. 초현실 주의를 끝으로 미술의 중심지 였던 유럽이 쇠하고 추상표현주의로 넘어 오면서 중심의 축이 미국으로 옮겨왔다.

이번호에서는 무엇을 그렸는지 아리송한 미술 추상표현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본다. 추상표현주의자들은 미술이란 무었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였고, 추상표현주의자들은 미술이란 창조의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창조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시 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액션페인팅이라 불리우기도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활동에 에너지와 액션, 동적인 행동들을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과거 미술개념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취하면서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미술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원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쟁에 대한 반발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전쟁중에 미국에 전파된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젊은세대 미국화가들이 영감을 받아서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을 더욱더 발전을 시킨 것이었다. 이것은 본능에 의지한 형상작업을 통해 비이성적일 뿐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즉흥적인 작품으로 발전을 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미술운동에 선구자는 아쉴 고르키, 한스 호프만, 잭슨 폴록이 있다. 추상표현주의는 알아 볼 수 있는 형상을 창조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기하학적인 추상에서 그들을 자유롭게 하였다. 그들은 열정적인 행위로 작품을 창조함으로써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행위로 그림을 그린 화가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잭슨 폴록이었다.

그는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 놓은채 붓을 내던지거나 상업용 페인트를 들이 붓거나 흘리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이젤위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린것이 아니라 벽화처럼 큰 스케일의 그림을 그렸다 폴록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무의식에 빠진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주었는데 그 이유는 그림에서 보여야 할 관습적인 요소들를 모두 무시하고 물감을 뿌리며 기하학적인 무늬를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자본력도 큰 기여를 했지만 폴록과 그의 추상주의 친구들이 창조한 즉흥적인 회화들은 미술의 중심지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오게 했고 미술이란 정의 자체를 바꾸어 놓는 결과를 낳았다. 그들로 인해 사물의 외형을 모방하는 것이 미술이 아니라 형태와 외형이 없어도 에너지와 감성이 느껴지는 것도 미술이 되었던 것이다. 추상표현주의는 전통회화에 큰 타격을 주면서 이후 미술 사조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다음 호에서는 대표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